아트와 디자인, 장르와 경계에 갇히지 않는 보석 디자이너 정재인 작가

기사입력:2018-01-23 11:04:24
민휘아트주얼리 정재인 작가(사진=김새봄 작가)
민휘아트주얼리 정재인 작가(사진=김새봄 작가)
[공유경제신문 박정우 기자] 인기 있는 대한민국의 드라마와 영화마다 올라가는 민휘아트주얼리의 크레딧은 정재인 작가의 작은 휴대폰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뷰 도중에도 쉴 새 없이 울리는 휴대폰에서 그녀의 바쁜 작업 일정을 조금이나마 추측해볼 수 있었다. 워낙 그녀의 작업들이 많이 알려져 있는 탓에 최근의 작업들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더라도 시간이 모자를 지경이다.

작은 에피소드를 담아 이야기를 만드는 그녀의 능력은 브랜드의 고귀한 자산이 됐다. 소원을 이뤄주는 ‘신들의 반지’로 등장한 ‘고백부부’ 장나라, 손호준의 결혼반지, ‘사랑의 온도’ 양세종이 직접 디자인해 서현진에게 프러포즈한 ‘씩씩이 꽃반지’, ‘다시 만난 세계’ 여진구, 이연희의 프러포즈 커플링 등 정재인 작가는 드라마의 중요 장면마다 소중한 순간을 봉인해 평생 간직되는 보석을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 등에서 줄곧 스포트라이트 받은 그녀의 작품들은 어느새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 그 자체가 됐다.

제품 하나하나의 공정이나 장인과 창조 정신에 대해 남다른 시각을 가졌던 민휘아트주얼리는 브랜드 설립 때부터 자체 공방과 디자인실이 함께 공존하는 형태로 운영돼 왔다. 디자인과 제조, 그리고 판매까지 원스톱 시스템을 구축한 민휘아트주얼리는 빠른 생산과 철저한 A/S로 차별화된 서비스를 자랑한다. 이처럼 안정된 생산 기반을 갖춘 브랜드는 고객의 환상을 현실로 만들어주기도 하고, 작가의 호기심과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주기도 한다.

그녀가 머릿속으로 구상한 아이디어는 며칠 만에 입체적인 조형물로 탄생하고는 하는데, 그 결과물은 단지 하나의 예술품을 넘어선다. 주얼리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그녀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작업하는 범위는 주얼리로 한정돼 있지 않다. 주얼리부터 소품, 의상, 가구, 미술 작품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 그녀의 캔버스에는 경계가 없다. 그녀는 순수예술과 응용미술 사이에서 상상력을 표현하는 시각 커뮤니케이션 매개체에 제약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다른 형태의 외형, 다른 목적이 적용된 작품들이다.

단순히 다양한 것들만 했다면 실패했을 수가 있겠지만, 그녀에게는 맥락을 짚어낼 수 있는 영특함이 있었다. 작품들의 제작과정과 그 정성을 들여다보면 모두 ‘사람을 향한 디자인’이라는 속 깊은 철학이 흐르고 있다. 서로 다른 작품들이지만 한 방향의 큰 줄기로 흐른 시간이 쌓여 한 목소리를 내고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고유한 가치를 만들어낸 브랜드는 마케팅 광고 등의 홍보 과정 없이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공감을 받게 됐다. 한류 드라마를 통해 비춰진 그녀의 작품은 한국을 넘어 일본, 중국, 미국, 영국 등에서도 전시 초청을 받고 있고, 곧 이태리에서도 전시가 예정돼 있다.

때로는 손으로 만들어서 단 하나밖에 없는 덕분에 상품성이 떨어지기도 하고, 전통 사극을 통해 선보인 장신구는 현대에서 사용하기에는 불편하기도 하다. 좋은 원석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싼 것도 있다. 브랜드 자체에 할인도 거의 없고, 연예인이라고 해서 무상으로 증정하는 일도 없다. 홈페이지에 업데이트된 상품보다 매장에 와야만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작품들이 훨씬 더 많다. 이렇듯 판매를 위해 애쓰지 않는, 어떻게 보면 소비자에게 불친절하게까지 느껴지는 브랜드지만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그만큼 브랜드가 가진 철학의 힘이 강력하다는 방증이기도 할 것이다.

민휘아트주얼리가 사극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나 시대극 영화 ‘아가씨’를 통해 선보이는 작업들은 물건을 팔기 위한 포트폴리오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런 채널은 광고도 아니고, 특정한 타깃 고객을 염두에 두고 작품 활동을 펼치는 것도 아니다. 불특정 다수와 소통하고 있는 창구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런 소통의 힘은 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디자인을 탄생시켰다.

사람들은 민휘아트주얼리가 담아내는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의미를 간직하기 위해 어쩌면 ‘쓸모없을 수도 있는’ 전통 사극에 등장하는 주얼리들을 구매한다. 민휘아트주얼리라는 브랜드만의 강력한 힘은 여기에 존재한다. 결국 본질에 충실한 디자인을 해낼 줄 아는 디자이너 브랜드에는 마케팅이 불필요한 것이다.

사랑의 온도’ 서현진 양세종의 프러포즈 반지(사진=SBS)
사랑의 온도’ 서현진 양세종의 프러포즈 반지(사진=SBS)

Q. ‘사랑의 온도’ 서현진과 양세종의 프러포즈 반지 디자인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디자인의 짝이 같지 않고, 보통과는 다른 방식으로 끼워진 커플링이지만 세상 하나밖에 없는 결혼반지로 화제를 모았다.

A. 마지막 결혼식 장면에서 각자 다른 의미를 가진 다른 디자인의 반지가 클로즈업 된다. 각자의 ‘사랑의 온도’가 다름을 상징하는 반지 디자인임이 부각되었다. 멋진 커플링이었다.

‘사랑의 온도’ 서현진 양세종의 프러포즈 반지(사진=SBS)
‘사랑의 온도’ 서현진 양세종의 프러포즈 반지(사진=SBS)

Q. ‘고백부부’ 장나라, 손호준의 반지도 화제가 됐다. 드라마가 반지로 시작해 반지로 끝나는 이야기다. 혹시 PPL을 통한 작업은 아니었나?


A. 아니었다. 반지도 구매해가셨다. 던져지는 장면에서는 반지가 상할까봐 걱정된다며 또 저가 버전의 반지를 추가 구매하시기도 했다. 보통 금액을 주시면 자막을 잘 안 써주시는데 자막도 잘 써주셔서 정말 너무 감사했다.(웃음) 너무 받기만 한 드라마라서 협조할 부분이 생겼으면 했는데 신계 부분이 나와서 다행이었다. 머리꽂이나 귀걸이, 브로치, 벨트 등 시간 내에 열심히 작업했는데 화면에 예쁘게 담겨서 감사했다.

‘고백부부’ 장나라 손호준의 결혼반지(사진=KBS)
‘고백부부’ 장나라 손호준의 결혼반지(사진=KBS)

Q. ‘화유기’ 1회의 첫 부분부터 등장하며 드라마 내내 클로즈업 된 차승원 반지 역시 화제다. 몽환적이며 신비로운 빛과 분위기를 지닌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A. 삼장의 피를 담으면 반지의 하얀 원석이 빨갛게 변한다는 설정이 있었다. 처음에는 원석 자체가 변하는 시안을 받았다. 근데 핏방울이 나오는 장면에서 그대로 반지에 갇히는 느낌을 가져오면 재밌을 것 같았다. 스노우볼을 활용한 디자인 시안을 보여드렸는데 감독님과 차승원 씨 모두 좋다고 말씀해주셨다. 처음에는 얇은 유리알로 구현했는데, 온도가 내려가면 깨져버리는 단점이 있었다. 디자인 그 자체나 완성도로만 보면 얇은 유리를 고집하고 싶었지만 추운 날씨에 야외에서 촬영되는 상황을 고려해야 했다. 그래서 유리에 비하지는 못하지만 플라스틱보다는 투명한 레진 소재를 활용했다. 레진 안에 증류수와 볼을 넣는 기법은 처음 해봐서 부족한 면이 있었기에 사실 불안한 마음이 컸다. 근데 화면에 예쁘게 담아주셔서 주변에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 정말 감사하다.

Q. 아무것도 보지 않은 상황에서 이야기만 듣고 제안 온 시안 대신 새로운 디자인을 제시하는 일은 어려울 것 같다.

A. 보통 아이디어 회의 과정에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주고받는 편이다. 안 받아들여지더라도 상처 받는 스타일은 아니다.(웃음) 예정보다 촬영 시간이 앞당겨져서 조금 힘들기는 했다. 사실 처음 온 시안대로 하얀 원석의 반지와 빨간 원석의 반지를 제작하는 것이 더 쉬운 일이기 때문에 ‘괜히 어려운 아이디어를 냈나’ 싶기도 했다.(웃음) 근데 화면에 너무 예쁘게 나와서 정말 행복하고 또 감사하다.

‘화유기’ 차승원 우마왕 반지(사진=tvN)
‘화유기’ 차승원 우마왕 반지(사진=tvN)

Q. 작품 스펙트럼이 팔레트처럼 다채롭다. 최근에 화제가 된 작업 ‘사랑의 온도’, ‘고백부부’, ‘화유기’만 봐도 디자인마다의 결이 다 다르다. 오로지 디자인 그 자체가 스토리와 캐릭터를 다시 곱씹어보게 만들고, 감동을 전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스타일과 장르가 완전하게 다른 작업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발표하는데도 각 분야의 작품들이 완벽한 수준의 완성도를 자랑한다는 것이 신기하다.

A. 스토리를 담아내는 디자인을 중시한다. 앞으로도 어떤 한 가지 색깔이나 장르에 국한되기보다 다양한 시도를 하며 재밌고, 유연하게 작업하고 싶다.

Q. 브랜드를 둘러싼 선입견 중 하나가 ‘민휘아트주얼리는 모델이나 패션 피플들만 착용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인상이다. 근데 디자인철학도 그렇고, 매장 안에 전시된 작품들 중에 데일리한 아이템들도 많다. 소비자를 잘 이해하기 때문에 다양한 취향을 가진 소비자들을 아우를 수 있을 것 같다.


A. 어떤 사람이라도 한 가지 색깔만 가지고 있지는 않다. 누구에게나 남성적인 면과 여성적인 면도 공존한다. 때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도 하나로 규정되지는 않는다. 나는 디자인을 할 때,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인 것을 따지기 이전에 디자인의 적합성, 디자인 고유의 아름다움을 먼저 생각한다.

Q. 본질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소재에 끊임없이 도전하며 완성도 높은 작품을 선보이는 것이 보기 좋다. 특히, 주얼리라는 특수한 전문 분야에서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계속해서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꾸준히 좋은 작품들을 선보여 왔기에 ‘디자인’ 이라는 큰 틀로 자연스럽게 설득 되는 것 같다.


A. 상황에 맞으면서도 오래도록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디자인에 관심이 많다. 하나의 아이템을 취향과 기분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길게 늘어지는 장식은 목걸이와 귀걸이 등에 탈부착 가능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길이감에 따라 스타일링을 다르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목걸이에 있는 큰 펜던트를 브로치나 헤어핀으로 사용할 수 있게 디자인하기도 한다.

Q. 드라마나 영화 등을 통해 디자인을 보여준다는 것은 대중의 공감을 사야 한다. 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예술분야기 때문에 대중미술이 더 어려울 것 같다. 프로젝트 혹은 작품마다 그 목적을 이해하고 정확히 이끌어가는 능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정재인 작가는 끊임없이 히트작을 내고 있다. 대중 매체를 통한 디자인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A. 기본적으로 작업에 대한 진실성과 성실성이 필요하다. 항상 유연하게 사고하며 새로운 표현을 추구해야 한다. 디자인 자체가 새로운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작업이다.

Q. 최근에 드라마들을 통해 선보인 디자인들 역시 연일 화제다. 가장 고생하면서 만든 작품이 있다면?


A. 가장 고생 많았던 주얼리는 ‘언니는 살아있다’의 사파이어 보석세트다.

귀걸이, 목걸이, 반지, 팔찌, 브로치 5가지 풀세트를 두 개씩, 총 10개를 만들었는데 그 많은 것들을 하루 반 만에 만들었다. 잠을 하나도 못 잤는데 주얼리마다 에피소드가 다 담기면서 매주 화면에 잘 나왔다. 고생한 시간이 다 상쇄되는 기분이 들었다.(웃음) ‘다시 만난 세계’도 그랬다. ‘포크 나이프’ 목걸이가 워낙 중요하게 나왔다. 만들 시간이 이틀인가 주어졌는데 손바닥에 놓이는 장면, 목에 착용되는 장면의 사이즈를 조금 다르게 해서 두 가지의 원본을 잡았다. 감독님께서 목걸이 예쁘게 찍어주신다고 다른 날에 한 번 더 재촬영해주셨다고 들었다. 정말 감사했다. 마지막에 여진구씨께서 이연희씨께 프러포즈하며 선물한 커플링도 진짜 예쁘게 나왔다. 예전에 정채연씨께 선물한 병뚜껑 반지와 오버랩 되는 장면을 고려해서 디자인했다. 그 반지와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심플하고 세련된 느낌을 담아 디자인했다.

‘다시 만난 세계’ 정채연 포크나이프 목걸이(사진=SBS)
‘다시 만난 세계’ 정채연 포크나이프 목걸이(사진=SBS)

Q. ‘다시 만난 세계’에서 정채연과 이연희가 여진구에게 선물한 포크 나이프 목걸이는 위시본을 연상시켰다. 무려 14년간 간직했던 목걸이라며 이연희 아역 정채연이 목걸이를 들고 있는 장면과 함께 나온다.

A. 제대로 보셨다. 쉐프가 되고 싶어 하는 여진구 씨의 꿈을 응원하기 위한 이연희 씨의 선물로 “꼭 성공하라는 의미다.”는 대사와 함께 채워지는 목걸이다. 소망을 이루라는 메시지를 담아 포크와 나이프로 위시본의 형태를 참고해 디자인했다. 메타포 요소였는데 알아봐주셔서 감사하다. 이 말을 몇 번 들었는데 신기하다. 어디에도 디자인 설명을 제대로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분들께서 디자인에 숨겨진 의도를 알아봐 주시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

Q. 단순히 드라마에 나왔다고 해서 주얼리를 구매하는 시절은 지났다. 근데 민휘아트주얼리에서 어떤 디자인을 했는지가 궁금해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드라마를 통해 노출되는 다른 회사의 주얼리들도 있지만, 유독 민휘아트주얼리의 작품은 몇 년이 지난 뒤에도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박혀있다.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나?

A. 스토리와 감성을 디자인에 녹여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 커지고 디자인에 존재감이 생기는 것 같다. 덕분에 드라마의 팬 분들도 디자인을 오래도록 기억해주시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공감대를 중시한다. 특히, 대중매체를 통해 선보이는 디자인은 보편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디자인이어야 한다.

Q. 드라마에 나온 작품들이 전체 매출에 어느 정도 영향이 있나?


A. 전체 매출에 비하면 크지는 않다. 솔직히 우리 고객 분들을 보면 드라마에 나왔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디자인 그 자체를 좋아해주시는 것 같다. 앞으로 드라마 MD 상품 시장이 더 커졌으면 좋겠다. 드라마를 통해 새로운 디자인을 많이 해보게 되는데 전부 살리고 싶다. 꼭 내 디자인이 아니더라도 좋은 디자인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지금은 그냥 지나치거나 일회성으로만 소비되는 디자인들이 너무 많다. 드라마가 바뀌어도 계속 똑같은 것만 나오게 되는 경우도 많다. 하나하나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 같다. 다 콘텐츠화가 될 수 있는 아이템들인데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체계화된 플랫폼이 갖춰져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Q. 그래도 이런 남다른 시각을 바탕으로 주얼리는 많이 콘텐츠화 시키지 않았나. 비결이 무엇이었나?

A.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소통하고 협력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디자이너로서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사람이다. 상품 디자인을 넘어 큰 그림이나 프로세스를 디자인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통이나 마케팅 등 내 전문 분야가 아닌 데서 세부적인 사항을 수립하고 실행하기는 어렵다.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하고 세부적인 계획들을 실행하는 사람하고 분리되어 있어야 더 좋은 그림들이 빨리 나온다.

Q. 작품과 MD 상품에는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작품을 만드는 경험이 많아서 높은 작품성을 갖춘 상품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어떤가?

A. 소재는 대체하기 힘들지만, 기법적인 면에서 도움이 된다. MD 상품은 생산성을 고려해 양산이 가능한 스타일로 디자인해야 한다. 액세서리라는 카테고리가 MD 상품화하기에 유리한 카테고리기도 하다.

Q. 해외 팬들의 지지를 받는 브랜드로 유명하다.

A. 정말 감사한 일이다. 우리 브랜드는 한국의 색이 묻어나는 브랜드다. 해외에 계신 분들께서 정말 너무 예쁘다고 메일주시고, 찾아와주시고 하실 때 단순히 우리 주얼리를 넘어 한국의 미를 아름답다고 봐주시는 것 같아서 감동이다.

Q. 해외에서도 인기 있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A. 디자인에 담긴 보편타당한 메시지와 의미 있는 스토리, 정서에 공감해주셨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지역과 인종에 관계없이 누구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정서가 있지 않나. 그저 솜씨 좋은 기술로 찍어내듯 만든 물건과 사람의 감정과 감성을 보듬은 물건은 다를 수밖에 없다. 디자인이라는 매개체가 언어의 장벽 없이 소통할 수 있다는 면에서 그 잠재력이 무한하다. 여기에 드라마라는 매력적인 스토리가 더해져서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Q. 남다른 시각으로 통상적인 방식과는 또 다른 프로세스를 구축하여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방식이지만 합리적인 기준으로 선보이기 때문에 거부감 없이 잘 받아들여진다. 보여주는 방식부터 다르니까 결과물도 기존의 결과물과는 차별화된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다.


A. ‘새롭게 해야지’라고 생각하지 않고, 재밌게 일하려고 한다. 같이 일하는 분들께서 내가 일을 참 재밌어 하는 것이 눈이 보여서 덩달아 신난다는 말씀들을 해주신다. 내가 원래 뭘 하더라도 신나하는 그런 에너지가 있기는 한 것 같다.(웃음) 전화 올 때 이름만 봐도 반가운 사람들이 많다. 전화 받아보면 "이번에 이런 작품을 하게 됐는데 같이 하고 싶어서 연락해봤다"고 하신다. 옆에 좋은 사람들이 많아서 항상 잘 챙겨주신다. 덕분에 나도 재밌게 일할 수가 있다.

Q. 새로운 방식으로 일하려면 유연한 사고를 가져야 할 것 같은데 어떤가? 늘 새로운 아이템을 제시해야 하는 대중문화 디자인 특성상 더 심할 것 같다.


A.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생각을 바꾸면 단점도 장점이 되고, 관점을 달리 하면 새로운 길이 보인다. 중심을 가지고 생각을 많이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선이 이어지고, 답이 보이게 된다. 이런 식으로 작업을 오래 하다 보니 본능적으로 감이 올 때가 더 많다. 디자인에서 완벽한 정답이 있을 수 있나 싶기도 하다. 지금 정답이더라도 내일 아닐 수도 있다. 삶이 계속 달라지고 변화하는 것처럼 디자인도 그에 맞게 자꾸 변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왕은 사랑한다’ 화장품 콜라보레이션 제품에서 변형된 나비 브로치(사진=MBC)
‘왕은 사랑한다’ 화장품 콜라보레이션 제품에서 변형된 나비 브로치(사진=MBC)

Q. 드라마 ‘왕은 사랑한다’를 통해 새로운 길을 또 한 번 제시했다. 민휘아트주얼리가 화장품 회사와 콜라보레이션한 나비 문양, 왕좌가 드라마의 중요한 순간들을 빛냈다.

A. 재밌는 작업이었다. 기업과 디자인 회사와 드라마가 만나 시너지 효과가 날 수 있었다. 사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어렵지 않게 조율되고, 많은 상황들이 잘 맞아떨어지기 쉽지 않다. 마침 ‘왕은 사랑한다’라는 드라마에 참여하고 있었고, 화장품 회사와 안마의자 회사로부터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의뢰받게 됐다. 좋은 접점이 없을까 고민했는데, 찾아보니까 다 있었다. 전통을 현대화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통을 생활 속에 함께하는 문화로 향유하는 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 면에서도 이번 작업이 의미가 있었다.

콜라보레이션 제의를 받은 브랜드들이 모두 프리미엄 이미지를 가져가는 브랜드였다. 또한, 협업을 의뢰받은 제품들이 최고가 라인들이었다. 그래서 드라마 속의 ‘왕’을 중심으로 콜라보레이션 작품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적합했다. 드라마기는 하지만 ‘왕’이 사용했다는 이미지는 기업으로서도 최고의 이미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도 잘 나왔고, 화면에도 잘 나와서 만족한다.

Q. 주얼리 회사 중에 동시간대에 화장품 회사와도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안마 의자와도 콜라보레이션을 한 회사는 민휘아트주얼리밖에 없을 것 같다. 다양한 분야와 협업을 보여주고 있는데 협업할 때 중시하는 것은?

A. 특정한 스타일에 편중하기 보다는 브랜드의 철학과 고유의 특성, 브랜드가 가장 중시하는 가치를 먼저 생각한다. 그를 기반으로 맞춤형 디자인한다. 화장품 회사와 콜라보레이션한 디자인과 안마 의자 회사와 콜라보한 디자인은 기본적인 콘셉트는 물론이고 사용하는 소재와 제조 방법 역시 다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왕은 사랑한다’ 임시완 처소에 배치된 왕좌(사진=MBC)
‘왕은 사랑한다’ 임시완 처소에 배치된 왕좌(사진=MBC)

Q. 사실 드라마를 보면서 왕좌의 디자인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는 생각은 못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아 그랬구나’ 하면서 새롭게 보인다.

A. 왕좌와 같이 상징적인 아이템은 방송 디자인이라는 카테고리 특성상 너무 튀는 디자인 하면 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원래 그 곳에 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도록 디자인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그렇지만, 기업과의 콜라보레이션이기 때문에 기업의 요구사항도 반영해야 했다. 기업의 요구사항은 원래 의자 그대로의 원형을 기본으로 하고 그 위에 새로운 디자인을 입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겉모습은 변형하되 형태는 변화를 크게 주지 않고, 본체의 특징적인 옆 라인은 그대로 살렸다. 그리고 기존에 세팅된 드라마 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한 형태의 디자인을 입혔다. 제품만을 생각하지 않고, 제품과 함께 보여 질 환경을 생각하며 디자인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룰 수 있었다.

‘왕은 사랑한다’ 기업과 드라마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완성한 왕좌(사진=민휘아트주얼리)
‘왕은 사랑한다’ 기업과 드라마와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완성한 왕좌(사진=민휘아트주얼리)

Q. 기업과 드라마 제작진 모두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면서 새로운 디자인을 하는데 힘들지는 않았나?


A. 원래 클라이언트의 이야기를 반영하고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디자이너의 일이다. 재밌게 작업했다. 콜라보레이션을 할 때, 고객 브랜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새롭게 디자인해야 한다. 본질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혁신적인 디자인을 만드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재밌고, 의미도 있다.

Q. 정말 다양한 디자인을 쉴 새 없이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콜라보레이션을 펼치는 기업의 범위도 상당히 넓다. 다양한 종류의 작품들을 개발할 수 있는 비결은?

A. 민휘아트주얼리는 어떤 매체나 장르라도 풍부하게 제작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자체 생산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만드는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생산의 모든 과정을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전체를 알면 디자이너도 디자인할 때도 더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구체적인 생산 방식과 노하우를 모르면 한계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의뢰인에게 생산 단가 내에서 제품화 시키는 방안을 정확히 설명하고, 역으로 더 좋은 아이디어를 제안해줄 수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디자인이 많이 필요한 방송 관련 일을 많이 의뢰받는 것 같다. 우리와 하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새로운 일들을 계속 의뢰해주신다.

Q. 많은 디자인을 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고갈되지는 않나?

A. 아이디어나 디자인은 가지에 가지를 치면서 무궁무진해질 수 있다. 많이 경험한 게 정말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 쌓인 경험들이 자꾸 더 다양한 디자인을 제시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된다. 우리처럼 다양한 일을 해보고, 결과물이 많이 있는 디자인 회사가 드물다. 하면 할수록 고갈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새로운 것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밑거름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제는 희귀병을 앓는 어린이를 위한 배지를 제작하는 일도 의뢰 받았다.

Q. 공공의 성격을 띠는 디자인까지 하다니 예측이 안 될 정도로 디자인의 범위가 넓다. 일반적으로 주얼리 디자인하면 전시나 패션쇼 등이 생각난다. 근데 민휘아트주얼리는 그 외에 영화, 드라마, 케이팝, 그리고 오페라, 뮤지컬, 공익 캠페인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이렇게 디자인의 범위가 넓고 제각각이면 무언가는 장르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올 법도 한데 그런 것도 뛰어넘었다. 장르와 어우러지면서도 늘 자신만이 감각적인 디자인을 입혀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끊임없이 다른 일에 도전하고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이유가 있나?

A. 장르 간 충분한 토의와 사전작업 덕분에 잘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애정을 가지고 계속해서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도 할 일이 많다. 보석 같은 기회들이 계속 주어진다. 사실 내가 안 하겠다고 하면 안 할 수도 있는데 나도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다 보니까 결국에는 하게 되는 일이 많다. 새롭고 재밌는 일들이 많다. 주변 분들께서 많이 도와주시는 덕분에 나도 일하면서 계속해서 배우고 성장해나가고 있다.

정재인 작가의 꾸밈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모습에서 얼마나 진심과 열정이 있는 사람인지 잘 알 수 있었다. 잘 나가는 디자이너 혹은 한 사업체 대표로서의 잘 정제되고 다듬어진 답변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 그가 한국을 이끄는 디자인 리더로 주목받는 것은 남다른 디자인력이나 화려한 경력보다는 그의 인간적인 매력 때문이지 않을까. 정직함과 성실함, 그리고 겸손함을 두루 갖춘 그의 설득이라면 누구라도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설득력 있는 디자인으로 클라이언트를 설득해야 하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에서 그녀가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이유를 잘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박정우 기자 news@seconomy.kr